[FF14] 심장소리

오딘히카 2016. 9. 13. 09:17

 아아, 손에 묻은 피를 보고 울지도 못하던 그 날이 떠올랐다.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던 당신의 손이 멈췄다. 잠시 빌렸던 당신의 무릎에서 일어나 당신을 마주보고 앉았다. 악몽을 꾸었나. 하는 그의 대답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당신을 보고싶지 않았다. 내가 인정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침묵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 당신은 나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두려워할 건 없다며. 나는 아직도 두려웠다. 내 나약함이, 당신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내 나약함이 두렵고도 두려웠다.


 당신과 함께 있는 이 곳은 더 이상 눈 덮인 들판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무와 풀이 가득한 숲이 되었다. 당신의 얼굴도, 행동도, 목소리조자 같았지만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종종 당신을 외면하고는 했다.


 그럴때마다 당신은 나를 끌어안았다. 우르드여. 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그제서야 나는 인정하는 것이다. 진짜의 당신은 죽었다는 것을. 가슴에 안겼음에도 들리지 않는 심장소리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었다. 


 나는 사실 그 시절이 그리웠다. 당신에게 안겨서 눈 덮인 들판에서 추위에 떨며 서로를 보며 웃던 그 날을 말이다. 당신의 심장은 내 심장소리에 반응하듯 쿵쿵 뛰었는데, 지금은 내 심장소리만이 홀로 뛸 뿐이었다. 

 

아아, 어찌하여 나는 이렇게 외로운가.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품을 벗어나지 못한채로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Posted by 푸나/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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